소박하지만 따뜻한 사랑 이야기
- 주영헌 시집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안영선(시인)
주영헌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소박하지만 따뜻한 사랑 이야기로 넘쳐난다. 그의 첫 시집인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가 다소 묵직한 주제인 체념과 상실의 경험을 담아냈다면 그의 두 번째 시집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박한 사랑, 특히 동반자에 대한 사랑을 참신한 언어로 담아낸 감수성 넘치는 시집이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사전에 설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쓴 시집이 아닌가 싶다. 첫 시집의 체념과 상실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독자에게 가깝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시로, 시인의 기획 의도로 꼭꼭 채워진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요즘도 매일 출간되는 시집이 수십 권에 이른다고 한다. 시인들은 한 권의 시집을 묶기 위해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준비하며 그 속에 시인의 삶을 온전히 녹여 넣는다. 시집을 갖는다는 것은 곧 시로 집을 한 채 짓는 일이며, 시인이 살아온 자기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는 새로운 시작(詩作)을 여는 출발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인에게 있어 시집 출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집 출간은 자비 출판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출판사에서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일정량의 시집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인지도가 높은 몇몇 시인의 시집을 제외하고는 2쇄를 찍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평론가들에게는 높은 평점을 받았지만 의외로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시집도 많기 때문이다.
주영헌 시인은 몇 해 전부터 절친인 김승일 시인과 함께 ‘우이시(우리 동네 이웃사촌 시 낭독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의 작은 서점을 중심으로 독자들과 직접 만나 시를 낭독하고, 시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독자의 측면에서 보면 참 따뜻한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소규모로 만나는 독자가 시인에게는 더없이 고마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두 번째 시집인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출간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독자에게 한발 한발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주영헌 시인이 독자로서는 또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웠을까.
최근 유튜버로도 활동 중인 주영헌 시인은 유튜브 채널인 ‘주영헌 시인의 북튜브’를 통해 ‘시인이 읽는 시’, ‘베란다 낭독회’ 등을 진행하며 독자에게 시를 배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독자들과 끊임없이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시인이며, 블로그인 ‘日刊_시를 읽는 아침’을 통해 매주 세 편의 시를 소개하는 열정의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그는 단 1분의 시간도 허투루 쓰는 경우가 없다. 그만큼 성실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실성은 각각의 시편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주영헌 시인의 이번 시집은 다분히 대중성을 염두에 둔 시집이다. 시가 대중성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것,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모든 시인이 바라는 로망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시집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주영헌 시인의 창작 열정에 주어지는 독자의 소중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시집으로 들어가 본다. 시집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부는 ‘당신이 잘 살아야 내가 살아요’, 제2부는 ‘원망은 혼자서도 잘 자랍니다’, 제3부는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나요’로 시인의 작품을 표제로 삼았다. 제4부는 ‘날이 좋아서 이번에는’으로 「빨래하기 좋은 날」의 한 연을 표제로 삼은 것이 재미있다. 물론 그의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랑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단어이며 모든 예술이 추구하고자 하는 항구적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말에서 사랑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그 뿌리가 15세기 문헌에 나타나는 ‘생각(思)하다’에서 연유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당시에는 ‘사람을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한자어인 ‘사량(思量)하다’를 어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헤아려 생각하다, 깊이 생각하다’의 의미를 품은 것이다. 즉,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주는 무한한 마력, 그것은 꽤 매력적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모두
심心 써야 하는 일입니다
그 마음 때문에
울컥하는 또 다른 마음도 있습니다
말로는 내 마음 다 담아낼 수 없어
당신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심心내요
힘내요
-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중에서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은 늘 어깨를 처지게 만든다. 무거운 어깨에 굽어지는 등은 일상의 무게가 주는 버거움일 것이다. 이러한 삶의 무게는 종종 의욕을 잃게도 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도 한다. 이렇게 힘들 때 누군가가 함께해 준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가 참 많다. 생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당신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힘이 날까. 시인은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도 마음[心]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경상도를 비롯한 일부 사투리에서는 ‘ㅎ’을 ‘ㅅ’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형(兄)’을 ‘성’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힘’을 ‘심’으로 발음한다. 이 시에서 마지막 연의 “심心내요 / 힘내요”처럼 ‘심(心)’이 주는 의미 못지않게 사투리처럼 따뜻하고 구수하게 들리는 어감도 꽤 매력적이다. 구구절절 말로 위로하는 것보다 문자로 툭 던지는 메시지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돌아누운 등이
절벽처럼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조용히 다짐할래요
당신을 진심으로 오해하고 있었나 봐요
당신이 잘 살아야
내가 살아요
- 「당신이 잘 살아야 내가 살아요」 중에서
살다 보면 갈등을 겪게 되는 일이 많다. 부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부부 싸움을 하면 화가 나 각방을 쓰거나, 또는 한 침대에서도 등을 맞대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부부 싸움이 대부분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거나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이중적인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시인은 참 순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음이 틀림없다. 등은 맞대고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이미 지구를 한 바퀴를 돌 만큼 멀어져 있는데도 지구 반대편에 누운 당신을 애타게 찾고 있으니 말이다. 살다 보면 작은 오해가 나비효과처럼 큰 파장을 일으켜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데 시인은 “짝사랑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돌아누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갈등의 원인을 자신의 오해로 치부하고 “당신이 잘 살아야” 한다고 고백한다. 그것이 자신이 잘 사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존재해야 내가 존재한다고 고백하는 시인에게 갈등이란 한낱 ‘칼로 물 베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픔과 슬픔, 아쉬움까지 툭툭 털어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채 털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눈물처럼 바닥에 떨어져 어두운 얼룩을 남기지만
괜찮습니다,
금세 마를 테니까요
- 「빨래하기 좋은 날」 중에서
빨래는 손으로 비누칠을 해가며 비벼빠는 손빨래가 제격이다. 물론 요즘은 손빨래하는 경우가 드물다. 모든 옷을 한꺼번에 넣은 세탁기에 세제와 유연제를 넣어 빨아, 건조기에 말려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은 추운 겨울에도 개울가에서 방망이로 얼음을 깨고 겨비누로 거품을 내어 빨래를 하곤 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숭고함마저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빨래가 단순하게 옷에 묻은 오물을 제거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에는 빨래가 하나의 종교적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아픔과 슬픔, 아쉬움까지” 털어내는 마음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을 과정을 거치면 “다시/ 사랑할 준비되었습니다”(「슬픔을 세탁하다」)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다. 물로 씻는다는 것은 재생(再生)의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천주교나 기독교에서의 세례와 같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안목해변에서 당신과 함께 마시던 커피는
어머니의 얼굴처럼
달곰했습니다
-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나요」 중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리움에 젖곤 한다. 이 시에서는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천사처럼 다정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당신에게 투영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진한 커피 향을 따라 당신 역시 어머니처럼 시인에게는 천사로 다가왔을 것이다. 정작 써야 할 커피도 당신과 함께라면 달곰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무조건 단 것이 아니라, 입에 당길 정도로 알맞게 달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천사 같은 당신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한없이 당신만큼,/ 바라보며 살고 싶습니다”(「안목 해변에 서서」)라는 수줍은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주영헌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은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육아휴직을 하던 시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의미, 사랑의 가치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인류 최고의 가치인 사랑의 의미를 담아 노래하는 주영헌 시인이 독자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다가가는 시인으로 오래오래 사랑받기를 바란다.
'내가쓰는散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MEMBER 4·15_안영선 (0) | 2021.12.08 |
---|---|
코로나로 읽는 세상_안영선 (0) | 2021.11.28 |
[용인신문] 내게 문학의 인연을 맺어준 용인 (0) | 2021.02.22 |
봄을 노래하는 언어의 발랄한 상상_이은규 시인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0) | 2019.10.18 |
역사에 생명의 숨결을 넣는 쉼 없는 작업_이원오 시인 『시간의 유배』 (0) | 2019.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