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안영선
신발 끈같이 꽁꽁 동여맨 실을 풀어내자
귀밑으로 햇살을 담은 금이 생겼다.
제법 햇살의 각도를 따라 만들어지는 힘의 이력
수술대 위에서 신체의 한 부분을 슬쩍 걷어 가던
칼끝은 예리한 웃음을 닮았다
주먹만 한 종양 덩이가 부끄럽게 뿌리를 드러내자
움츠렸던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힐긋힐긋 스쳐가는 골목길의 사내들이
시선을 재빠르게 걷어 감추는 것도
종양 뿌리에 붙어 있던 낡은 두려움이 잘려나간 때문이다
흉터를 걱정하는 아내를 보면
미안하지만 자꾸 웃음이 나온다
한 주먹의 살덩이를 도려내고 얻은 생이
더 강하다는 묘한 사실에 몸이 가볍다
작은 아이가 떠준 모자를 쓸 때에도
귀 밑을 살짝 드러내는 것은
처음으로 몸에 새긴 타인의 흔적 때문
흉터가 문신으로 남기를 기도한 적이 있다
가끔은 이 음영 자국에 겸손해지는 것이 있다는
그 사실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다
오늘은 딸아이의 졸업식장 가는 날
가끔은 흉터가 흐릿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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