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
안영선
꿈꾸는 후생後生이 나무 밑으로 스며들었지
푸석한 잔디가 밑동을 덮는 동안
단풍나무의 푸릇한 기억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어
그늘을 늘이던 모난 가지는 툭툭 잘려나갔어
오래 묵은 옹이는 환부의 딱지처럼 단단해졌지
뿌리 깊은 생장점은
번식의 촉수처럼 유골의 온기를 쫓고,
촉촉하던 물관은 모세혈관을 만들겠지
나이테는 표찰에 적힌 나이를 헤아렸어
나무의 눈이 동물성으로 반짝이기 시작했지
수십 수백의 영혼이 수군거리는 저곳,
한 때는 물길과 바람이 관장하는 초식의 영토였어
뿌리와 가지와 그늘로 영역을 표시하던 수목,
유골의 따뜻한 체온은
나무의 이면에서 부활을 꿈꿨지
나무는 죽음의 영역을 넓혔고
유골에 덮인 나무는 공중에 붉은 표식을 남겼지
(계간 <문학의오늘>, 201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