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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쓰는詩

더덕북어-안영선

by 안영선 2013. 12. 17.

 

 

더덕북어

 

안영선

 

 

용대리 덕장에 겨울이 소복이 쌓인다

이 비릿한 어류의 본적은 러시아산 오호츠크 바다

바다를 떠난 순간 더러는 이름을 바꾸기도 국적을 바꾸기도 한다

피었다 시든 얼음 꽃에서 비릿한 이국 언어가 흘러내린다

굳고 단단한 몸이 바람과 햇살에 겨워 숨겨둔 바다를 쏟아낸다

속살이 푸석하게 부풀어 오른다

 

낡은 침대 위 아버지가 어류처럼 누워 있다

바람에 한껏 마른 낡은 몸

쥐어짜듯 온몸에서 물기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물기에 바다를 담은 지도가 흥건하다

한 때 명태처럼 깊은 세상의 주인이었을 아버지,

단단한 고집과 견고한 헛기침을 놓자

물기 빠진 팔과 다리에서 푸석푸석 소리가 난다

속살이 푸석해질수록 아버지는 이름을 바꾸곤 했다

 

어머니는 황태를 더덕북어라 부른다

두드리지 않아도 푸석한 속살이 부드러워 좋다 한다

온갖 시름 내려놓아야 속살이 부드러워진다는데,

채이고 흔들리고 숨죽여 온 생

아침부터 황태 속살을 뜯던 어머니가

침대 위 아버지를 슬쩍 돌아본다

물기 빠진 아버지 낡은 배가 푸석하게 부풀어 오른다

 

(계간 <문학의오늘>, 201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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