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몽유도원도 14
- 혹한記
안영선
생의 무게는 질량이 아니라 촉감이래요
아버지는 사는 것이 늘 차가운 바람 같다 했어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는 감기몸살에 떨고 있었지요 가난의 무게는 빈 쌀독이 아니라 문틈으로 들어오는 싸늘한 냉기라고 했어요
구의역은 2교대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 출근길이었지요 어느 날 이틀 만에 돌아오는 아버지 손에는 스크린 도어에 새긴 한 청년의 소식이 들려있었지요 아버지는 봄 한 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정규직에서 비껴간 촉감의 변주곡이라 했지요
누군가에겐 사계절이 아닌 한 계절만 있다 했어요 아버지의 사계절도 늘 혹한기 속에만 숨어 있었지요 아버지는 오늘도 그 혹한의 끝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봄이 오면 혹한의 생도 살랑살랑 도화 향기 속에서 아른거리겠지요
* 2020년 [불교문예]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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