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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쓰는詩

손바닥 체온계-안영선

by 안영선 2020. 6. 10.

손바닥 체온계

 

안영선

 

 

중앙 현관에 열화상 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지

바이러스를 잡는 렌즈는 파수꾼처럼 우릴 감시했어

렌즈 앞을 지날 때마다 모니터에는 수많은 얼굴이 담겼지

판결을 기다리는 짧은 순간, 정말 긴장할 수밖에 없어

화면에 비친 얼굴 위로 수감번호처럼 숫자가 새겨졌지

카메라는 냉혹하게 우릴 두 집단으로 분류하기 시작했어

어떤 이는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어떤 이는 인적이 드문 공간으로 유배되었지

봄날의 하루는 이리도 서늘하게 시작되었어

어린 시절 얼음을 지치다 돌아오던 날이 기억나더군

그때는 늘 기침을 달고 살았지

그런 날이면 빨간 볼을 비벼주던 어머니는

치마에 손을 닦고 이마를 짚어 주곤 하셨어

차가운 손바닥으로 내 유년의 온도를 재곤 하셨지

체온을 손바닥으로만 기억하던 어머니는

차가운 물수건을 이마에 얹어주셨어

언제는 아랫목에 눕히고 두꺼운 솜이불을 덮어 주기도 하셨지

오늘도 열화상 감지기 앞을 조심스레 지나는데

어머니의 차가운 손바닥이 자꾸 이마를 짚어 주고 있었어

 

 

 

* 2020년 [문학의오늘]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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