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몽유도원도 13
- 병상記
안영선
무딘 생의 마디를 도려내는 일이야
고단한 생이 뼈와 뼈 사이 촘촘히 박혀 있었지 갈기갈기 찢긴 슬관절 반달연골 속 지나온 이력이 선사 동굴 벽화처럼 차곡차곡 새겨져 있었어 벽화 속에는 눈비 내리던 밤의 유년과 열정으로 울분을 토하던 청춘,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가족 생계를 이어온 성년의 시간이 분주하게 서성이곤 했지 마디가 삐거덕거릴 때마다 무딘 생도 휘청거렸어
지금 의사는 내 중년의 이면을 판독 중이야 신이 내린 형벌을 낯선 명명으로 규정짓던 의사는 노련한 손끝으로 내 무딘 생의 원인을 뿌리째 작업 중이지 잘려나간 조각과 더러는 꿰매놓은 조각들이 이제 무릎의 새 축을 만들겠지 반달이 병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시간 나는 침대에 누워 배터리처럼 몸을 충전 중이야
충전이 완료되면 무딘 생도 도화 향기 속에서 화사하게 피어나겠지
- 2019년 [미네르바] 겨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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