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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쓰는詩

만의사萬儀寺 가는 길 - 안영선

by 안영선 2019. 12. 14.

만의사萬儀寺* 가는 길

 

안영선

 

 

작년 이맘때

무봉산 한 자락에서 주거를 시작했다

만의사로 향하는 길목이었을 선납先納**

불공을 드리려 길게 늘어섰다던

절박한 꿈의 길목에선

소작농의 흥건한 체온도 사라졌다

고라니 몇 마리가

아파트 울타리까지 내려와 풀을 뜯는다

한 가족쯤일 게다

움찔 놀라던 동작도 제법 둔해졌다

제 영역을 빼앗긴 저 초식동물의 일상에

내 일상이 새 터전을 잡은 것이리라

싹둑 잘려나간 선납고개 끝자락

저수지가 해거름에 맞춰 휘청거린다

택지개발 전 논밭 생명줄을 움켜쥐었던 샘의 뿌리

둑방길을 따라 동탄선납숲공원이 생겼다

무심히 줄지어 수면을 걷는 오리 떼

불심을 향한 마음이 저리 깊었을까

풀무골로 1번길 따라 만의사 가는 길

승병僧兵의 풀무질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가을볕에 풀무치 소리가

무봉산 깊은 골짜기에서 수군거린다

 

 

*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중리 무봉산(舞鳳山)에 있는 절

** 영천동에서 만의사 가는 길목에 있던 고개로 불공을 드리기 위하여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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