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이 시의 옷을 입다
- 김삼주 시인 『마당에 풀어진 하늘』
안영선(시인)
김삼주 시인을 문우로 만난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필자가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 1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2007년 여름이 아닐까 싶다. 지하실의 습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문학회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김삼주 시인의 첫인상은 매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낯가림이 심했던 그가 이제는 10년째 용인문학회의 부회장직을 맡아 봉사하고 있으며, 용인문학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시창작반의 실무를 맡아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2004년 《문학21》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올해 드디어 첫 시집 『마당에 풀어진 하늘』을 출간했다. 등단 후 시집 출간까지는 다소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만큼 첫 시집에 담긴 그의 시에 대한 열정과 시론을 만날 수 있어 설렌다. 동갑내기 문우로서 시인 김삼주를 바라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의 첫 시집 『마당에 풀어진 하늘』 속에 비친 세상을 바라보며 그의 시혼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1.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다. 두터운 신앙심 때문일까?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삶은 주변의 지인들이나 초면인 회원들에게도 푸근하게 다가온다. 이는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그 대상이 사람이거나 사물이거나 그의 시선은 늘 긍정적이고 따뜻하다. 때로는 너무 따뜻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따뜻한 시선은 그의 시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푸른빛을 켜고 살캉거리는 고양이/ 실타래처럼 엉킨 토사물 옆에 오도카니 앉아/ 화다닥 투신하는 꽃잎 별을 바라본다/ 서슬 퍼런 두 눈/ 포근한 꽃눈이 된다
- 「꽃 지는 날, 문득」 중에서
비취색 춤사위로 봄을 손짓한다/ 바람으로 나의 존재를 알린다/ 잡초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나/ 늘 긴장감이 맴돈다// 민들레가 노랗게 뽐낼 때 난 배경이 된다.// 땅의 온기, 바람의 숨결/ 동그랗게 말려 있는 꽃대 하늘하늘 춤을 춘다
- 「꽃마리」 중에서
시인의 눈에는 서슬 퍼런 고양이의 눈도 꽃눈으로 보인다. 토사물 앞에서 살캉거리는 고양이가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의 후반부에 나오는 ‘대문을 밀치며 들어오는/ 아버지의 투박한 손’에 들려 있는 들꽃 한 송이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유사한 이미지를 지닌 고양이와 아버지가 꽃이 지는 것을 매개로 하여 온화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댓잎처럼 깐깐한 성격’에 ‘투덜거리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구시렁거리’는 아버지이지만 시인의 시선에는 들꽃을 한 다발 들고 들어오는 그저 따뜻한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
꽃마리는 잣냉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들꽃이다. 잎이나 꽃의 크기가 작아 나비나 벌도 잘 날아들지 않고, 개미나 작은 벌레가 주로 찾는 꽃이다. 사람들의 눈에 잘 들지 않는 잡초 같은 꽃이지만 시인의 시선에는 노란 민들레보다 더 소중한 존재일 수 있겠다. 시적 화자인 나를 꽃마리로 설정한 시인은 비록 보잘것없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세상의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2. 감각적 묘사와 시어가 주는 경쾌함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감각적 묘사는 발랄한 감성을 통해 시를 경쾌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시인은 의태어나 의성어를 통해 대상에 대한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퇴근길 나뭇잎 하나/ 가슴을 톡 건드린다// 몸이 기운다// 나뭇잎이/ 수채화를 그린다/ 물에 담긴 하늘을 휘휘 젓는다/ 손끝으로 물과의 놀이를 시작한다/ 자국이 생기지 않게 사뿐사뿐/ 붓질은 섬세하게/ 줄다리기가 심상치 않다/ 서두름과 기다림이 팽팽하다// 번짐과 섬세함의 경계가 흐려진다// 나에게 물들여지고/ 너를 내 안에 정교하게 새긴다// 가을이 하늘에 걸린 날
- 「나뭇잎 하나가」 전문
부엌에선 육수가 자글자글 끓고 있다/ 날씬한 면발 쭉쭉 미끄러지고/ 텀벙텀벙 뛰어들 차례다/ 온몸을 면발에 비비고 국물에 체취를 맡기며/ 다문 잎 커다랗게 벌리니/ 함박웃음 그릇에 둥실 띄운다// 후루룩 후후~ 내 몸을 탐닉하는 손// 고향으로 깊게 밀어낸다
- 「회향懷鄕」 중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예리하다. 사람들의 눈에는 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이 특별할 것도, 신비로운 것도 없는, 그저 단순한 자연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을 따라 떨어지는 나뭇잎은 특별하고 신비롭다. 「나뭇잎 하나가」에서 보듯 시인은 ‘나뭇잎→ 물에 담긴 하늘→ 붓질 → 파문(번짐과 섬세함의 경계)→ 가을이 걸린 하늘’로 이미지를 전이시키면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작은 사물 하나를 통해 시적 화자와 자연을 하나로 묶어 물아일체, 내지는 자연 친화의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시 「나뭇잎 하나가」가 정중동(靜中動)의 이미지였다면, 시 「회향」은 꽤 역동적인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의태어와 의성어를 통한 시각 및 청각적 이미지가 통통 튀는 경쾌함을 준다. 그래서 식당에서 해물칼국수를 시켜 먹는 장면은 충분히 고향을 품을만하다. ‘쭉쭉 미끄러지는’, ‘둥실’과 같은 의태어가 주는 시각적 이미지와 ‘자글자글’, ‘텀벙텀벙’, ‘후루룩 후후~’와 같은 의성어가 주는 청각적 이미지는 이 시를 경쾌하고 만든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발랄하고 정겹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함박웃음 그릇에 둥실 띄운다’라는 청각의 시각화를 통한 공감각적 이미지는 이 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함박웃음’ 속에는 이미 ‘회향’의 정서가 깊게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따뜻한 시선을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3. 의학 용어와 시어의 경계 허물기
시인은 오랜 기간 한의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간호사로서의 경험을 그의 시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의학 용어가 그의 시 속에서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자기만의 시적 언어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끝내 말하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던 옹이들/ 조심스레 터트린다/ 서로의 얘기에 귀 기울여/ 검붉은 심혈을 토한다// 점점 선홍빛으로 차오르는 부항단지// 갯지렁이처럼 스멀스멀 맺힌 한이 풀려 나온다/ 시원한 웃음소리 부항附缸 컵에 모인 혈血// 흑장미 일곱 송이 눈부시다
- 「흑장미」 중에서
내가 죽고/ 너를 살리기 위해/ 선퇴蟬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외투」 중에서
시 「흑장미」에서는 흑장미의 검붉은 꽃을 ‘부항附缸 컵에 모인 혈血’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말하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던 옹이’를 ‘한’이라고 말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흑장미의 꽃말이 ‘죽음, 이별, 원한, 증오’ 등으로 표현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부항이라는 의료 기구를 통해 맺혔던 한을 풀어내고 눈부신 흑장미로 피어나는 시적 형상화를 보여 주고 있다.
선퇴(蟬退)는 매미가 변태할 때 벗어놓은 허물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경련이나 경직 증상, 피부염 개선에 효능이 있는 한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아토피 피부염과 파킨슨병에도 좋은 효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매미의 짧은 생이 한약재가 되어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 묘한 시적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외에도 ‘뽑힌 다리 뚝뚝 잘린 노근蘆根(「갈대」)’,이나 ‘독하고 끈질기게 너를 탐한 후 얻어 낸/ 토사자(「토사자」)’로 표현된 갈대의 뿌리(노근)나 기생식물인 새삼의 씨앗(토사자), 시 「전침」, 「귀거울」, 「이탈된 근」과 같은 낯선 시어들이 그의 시 속에 잘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은 간호사라는 오랜 실제 경험의 산물 덕분일 것이다.
김삼주 시인은 따뜻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감각적인 묘사와 이미지를 통해 경쾌한 운율의 시를 창작하기도 하고, 낯선 의학 용어를 사용하여 시어의 폭을 확대하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의 창작 과정을 통해 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혼을 펼칠 수 있었다.
김삼주 시인의 시편들은 따뜻한 시선을 통해 시의 옷을 입고 있다. 시 옷의 종착역은 대상에 대한 무한의 사랑과 그리움이다. 무한의 사랑과 그리움이 짙게 묻어나는 시집 『마당에 풀어진 하늘』을 다시 한번 읽는다.
독자에게 무한 사랑을 받는 김삼주 시인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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