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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나들이

들리다와 들르다

by 안영선 2009. 8. 3.

"야, 우리 병철이 집에 들려서 가자.", "그래, 동물원은 병철이 집에 들린 다음에 가자."
'어디에 방문한다'는 뜻의 말을 할 때 사람들은 흔히 '들리다', '들려서', '들린'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모두 맞지 않다.
그렇다면 이 경우, 어떤 낱말을 써야 할까. 바로 '들르다'를 써야 한다. 사전을 보면 들르다와 들리다는 그 뜻이 분명 다르다.
우선 들르다는 '지나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무르다'는 뜻을 갖고 있다. 바른 용례는 '친구 집에 들르다/포장마차에 들렀다가 퇴근했다/길동이는 시장에 들러 잠바를 샀다/나는 그 가게에 들른 적이 있다' 등이다.
이와 달리 들리다는 꽤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병에 걸리거나 귀신이나 넋 따위가 덮치다'라는 뜻을 가진다. '감기가 들리다/그녀는 신이 들렸다/신 들린 사람'이 그 예다.
들리다는 '물건의 뒤가 끊어져 다 없어지다'는 의미로 쓰여 '밑천이 들리다/좋은 것은 다 들리고 찌꺼기가 남았다'는 문장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 때, 들리다는 바닥나다와 같은 말이다.
또 들리다는 '듣다'의 피동사 또는 사동사로 쓰인다.
'음악소리가 들리(린)다'는 피동사로 쓰인 예이고, '아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렸더니 너무 좋아한다'는 사동사로 쓰인 예이다. 이외에 '들다'의 피동사, 사동사로도 쓰이는데 '양손에 보따리가 들리다/무릎을 치니 다리가 번쩍 들리다'는 피동사로, '친구에게 꽃을 들려 보냈다'는 사동사로 쓰인 경우다.
이 정도면 충분히 구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희에게 들려서/들러서 가자'라는 문장을 예로 복습해 보자. 위 문장 중에 '들려서'는 들리다의 어간 '들리-'에, '-어서'가 결합한 것이고, '들러서'는 들르다의 어간 '들르-'에 '-어서'가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잠깐 방문해 머무르다'는 뜻을 가진 들르다의 활용형인 '들러서'를 써야 한다.
조성철chosc1@kfta.or.kr

* [한국교육신문]의 <바른말 고운말>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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