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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쓰는散文

신갈저수지에 대한 단상-안영선

by 안영선 2017. 7. 29.

 

신갈저수지에 대한 단상

 

 

안영선(시인, 용인문학회장)

 

 

나는 오늘도 물안개 피어나는 풍광을 보며 아침을 연다. 청명산 기슭, 17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신갈저수지의 풍광은 언제나 내 서정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기흥호수공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내게는 호수공원보다 신갈저수지라는 표현이 훨씬 정겹다. 저수지라는 말 속에는 묘한 서정적 정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내게 늘 새로운 아침을 열어주는 저수지의 풍광은 차라리 대형 액자에 담긴 한 폭의 그림이기도 하다. 이곳에 이사 온지 일 년 만에 저수지 위로 떠오른 쌍무지개를 세 번이나 봤으니 그 감흥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저수지 둘레길을 걷는다. 저수지 주변을 잇는 나무 데크를 따라 걸으며 일상에서 부딪히던 고민의 매듭을 풀기도 하고, 시상을 여는 영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산책길에서 만난 민물가마우지를 한동안 관찰하기도 했다. 가마우지가 날개를 접고 물속을 질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젖은 날개를 말리기 위해 날개를 펴서 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난 시절 삶의 무게에 눌렸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 마음을 담아 낸 시가 <가마우지>이다.

 

……

옛날부터 이 호수 속에는 가난한 새 한 마리 살고 있어

사치스런 날개를 몸통에 바싹 붙인,

발을 지느러미처럼 휘저을 줄 아는,

날렵한 유선 몸매를 가진 새 한 마리 살지

어류의 후미가 입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늘도 새는 살기 위해 날개를 접었어

내 어릴 적 아버지도 날마다 날개를 접어야 했지

접은 날개를 러닝셔츠 속에 꼭꼭 감추곤 했어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젖은 날개를 꺼내 말렸지

날개는 언제나 지독한 사치였어

가마우지처럼 날개를 접어야 사는 아버지에게는

 

나는 삼십 년 가까이 용인에 살고 있다. 내 삶의 절반 이상을 용인에서만 살았으니 태어난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용인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신갈저수지에 대한 추억은 더 아련하다.

 

신갈저수지와의 첫 인연은 1987년으로 기억한다. 서울에서만 살던 내게 용인은 강원도의 어느 후미진 골짜기와도 같은 시골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해 여름 논산으로 입대하여 훈련소를 마친 후 병과 교육을 위해 신갈에 도착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이 느껴진다. 신갈 나들목 어디쯤 군부대가 있었고, 아침마다 동료들과 저수지를 향해 구보를 하곤 했다. 가을 들녘과 어우러진 저수지의 풍광에는 20대 초반 청춘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묘한 마력이 숨어 있었다. 두 달 남짓 생활을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이곳을 떠났지만 마력에 이끌려 다시 직장 생활을 위해 용인에 정착을 했고, 삼십 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온 용인은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마법은 데자뷰처럼 신비롭다. 1997년 가을, 나는 생애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맞은편, 저수지 건너 쪽이다. 신갈저수지가 휴양시설로 개발될 것이라는 소문이 새록새록 돋아나던 시절, 거실에 앉아 있으면 석양에 물든 저수지의 물결이 황금빛처럼 반짝이곤 했다. 저녁 무렵이면 저수지 길을 거닐며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속으로는 이곳이 개발되지 않아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도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끝내 이루지는 못했지만 낚싯대를 하나 구입해서 황혼이 깃던 수면을 매일매일 바라보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다. 만약 그때 저수지를 바라보는 시간이 잦았더라면 시 <가마우지>는 이십년 쯤 먼저 태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년 봄, 지금 사는 아파트에 입주를 하고 보니 시간적으로 묘한 울림이 있다. 처음 저수지를 만난 지 십년 만에 새집을 장만하며 다시 저수지를 만났고, 또다시 이십년 만에 그 저수지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인연이라 이런 것일까?

나는 오늘도 물안개 피어나는 풍광을 보며 힘차게 아침을 연다.

 

- 2017년 [용인문화] 여름호